솔직히 저는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습니다.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고, 의심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유전체학(古遺傳體學) 연구 결과들을 들여다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오래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후가 인간의 이동을 결정했고, 그 이동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반도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
제가 처음 이 내용을 접했을 때 가장 놀란 부분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관계였습니다. 호모 에렉투스란 지금으로부터 수십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 지구 각지에 살았던 인류의 한 종으로, 흔히 '직립원인'이라 불립니다. 많은 분들이 호모 에렉투스가 점진적으로 진화해 호모 사피엔스가 됐다고 생각하시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화는 포켓몬처럼 한 종이 다른 종으로 순서대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인류 종이 동시에 지구에서 살았고, 그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이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여러 인류 종이 불과 3만 년 전까지도 공존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새삼 놀랍습니다.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한국인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입니다. 이들은 12만~13만 년 전부터 사하라 사막의 면적이 줄어들 때마다 초원 길이 열리면서 아프리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당시 수렵 채집인들은 동물을 따라 이동했고, 그 동물들은 초지를 따라 움직였습니다. 결국 기후가 인간의 이동 방향을 결정한 셈입니다.
최종빙기 최성기와 한반도의 비어있던 시간
이 부분이 제 경험과 가장 선명하게 겹쳤습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빙하기 인류 이동을 다룬 내용을 봤는데, 그때도 기후 변화가 결국 모든 이동의 원동력이라는 점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이번에 더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하니 실감이 달랐습니다.
최종빙기 최성기(Last Glacial Maximum, LGM)란 마지막 빙하기 중에서도 가장 추웠던 시기를 가리키며, 대략 2만 5천 년 전에서 1만 8천 년 전 사이를 말합니다. 이 시기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지금보다 약 9도 낮았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요즘 기후 위기 논의에서 2도 상승만으로도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데, 9도 차이가 얼마나 극단적인 환경이었는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이 시기에 서해는 상당 부분 육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입니다. 수렵 채집인들은 산지가 많은 한반도보다 드러난 서해 평야의 초지를 선호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까지 올라갔던 사람들은 추위가 극에 달하자 다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서해 평야에는 이미 경쟁이 치열했고, 일부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한반도 산지 쪽으로 들어왔습니다. 1만 8천 년 전 이후 온난화가 시작되면서 초지가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자, 이 소집단들도 대부분 북쪽으로 따라 올라갔습니다. 한반도는 다시 빈 땅이 됐습니다.
한반도가 한때 완전히 비어 있었다는 사실, 저는 이걸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유전체학이 밝혀낸 악마문 동굴의 비밀
8,200년 전, 북대서양 열염 순환(Thermohaline Circulation)의 교란이 발생했습니다. 열염 순환이란 바닷물의 온도(열)와 염분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전 지구적 해류 흐름으로, 지구 전체의 열을 분배하는 일종의 '자연 보일러' 역할을 합니다. 이 순환이 약해지거나 멈추면 북반구 전체가 급격히 추워집니다. 영화 투모로우가 이 시나리오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한파가 동아시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연해주 쪽에 살던 사람들이 다시 동해안을 따라 한반도로 내려왔습니다. 이들이 가져온 것 중 하나가 토기 기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집단이 오늘날 한국인의 유전적 바탕이 됐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악마문 동굴(Devil's Gate Cave) 인골입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굴된 이 인골은 약 7,700년 전의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고유전체학(Paleogenomics) 기법을 통해 이 인골의 DNA를 추출·분석한 결과, 악마문 동굴 인골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현대인 집단이 바로 한국인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유전체학이란 고대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유전자 지도를 복원하고, 현대인과 비교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이 분야를 개척한 스반테 페보 박사는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출처: Nobel Prize).
제 경험상, 이렇게 오래된 인골 하나가 수천 년의 이동 경로를 역추적하는 데 결정적 실마리가 된다는 사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향이 고고학 유물에서 DNA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도요.
홀로세 이후 농경민의 유입과 한국인의 완성
8,200년 전의 수렵 채집민 집단만으로 지금의 한국인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이후에도 기후 변화는 계속 인구 이동을 촉발했습니다. 홀로세(Holocene)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간빙기(間氷期)의 공식 명칭으로, 약 1만 1,700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간빙기란 빙하기 내에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시기를 말합니다. 즉, 우리는 지금도 넓은 의미에서 빙하기 속의 따뜻한 막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홀로세 이후 요동·요서 지역의 농경민 집단이 한반도로 주기적으로 내려왔습니다. 분석에 따르면 약 3,700년 전을 시작으로 3,200년 전, 2,800년 전, 2,300년 전 등 대략 500년 주기로 이주가 이루어졌습니다. 기후가 나빠질 때마다 더 남쪽, 더 따뜻한 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 패턴은 지금까지 제가 역사를 이해하던 방식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치적 사건이나 전쟁이 아닌 기후가 인구 이동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었다는 점입니다.
한국인의 유전적 구성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8,200년 전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수렵 채집민 (연해주·만주 계통)
- 3,700년 전 이후 요동·요서에서 유입된 농경민 집단
- 4세기 삼국시대 정립 이후 외부 대규모 이주 사실상 종료
이 세 흐름이 한반도 안에서 혼합된 결과가 지금의 한국인입니다. 유전적으로는 모두 더 먼 과거에 순다랜드(Sundaland, 현재의 인도네시아·말레이 반도 일대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지역)를 거쳐 올라온 집단에서 출발했습니다. 근원을 따지면 남쪽에서 올라와 북쪽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온 사람들의 후손인 것입니다.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강조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 1960~70년대 민족 정체성 강화 목적의 교육 정책과 관련이 깊다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4세기 이후 대규모 이주가 줄었다는 의미에서 한반도 내 동질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이전에는 끊임없는 혼합의 역사였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단순합니다. 기후가 바뀌면 사람이 움직이고, 사람이 움직이면 섞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만 년에 걸쳐 반복했던 그 과정이 지금 다시 눈앞에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해수면이 오르고 거주 불가 지역이 늘어나면, 과거의 이동 패턴이 다시 작동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반도가 언젠가 비워졌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도 영원히 보장된 공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에서 역사는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경고처럼 읽힙니다. 우리의 뿌리가 기후 난민의 이동으로 만들어졌다면, 그 뿌리를 지키는 일도 결국 기후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한국인, 우리는 기후 난민의 후예인가? (feat. 박정재 교수) [취미는 과학 / 21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9p65iwWclTw&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