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공식적으로 발견된 원소는 118개입니다. 그런데 저는 학창 시절 그 118개 중 고작 20번까지만 억지로 외웠고, 왜 외우는지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최근에 과학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그게 얼마나 아쉬운 일이었는지 새삼 느꼈습니다.

주기율표, 외우라는 게 아니라 읽는 법을 배우는 거였다
솔직히 처음 이 방송을 틀었을 때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과학 이야기를 예능으로 만들면 얼마나 재밌겠어'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빠져들었습니다.
방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기율표를 "외우는 대상"이 아니라 "읽는 법이 있는 지도"로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에 비유한 부분이 특히 공감됐습니다. 1호선이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통째로 외우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정하는 순간 그 지도는 의미를 갖습니다. 주기율표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원자 번호(atomic number)입니다. 원자 번호란 원소 기호 앞에 붙은 숫자로, 원자핵 안에 있는 양성자의 개수를 나타냅니다. 이 숫자는 어떤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원소 고유의 특성이라, 말 그대로 원소의 지문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양성자가 92개면 무조건 우라늄입니다. 다른 원소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이 번호가 그냥 줄 세우기용 숫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원소의 본질 자체를 담고 있다는 건 방송을 보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주기율표에서 가로줄은 '주기(period)'라 부르고, 원자핵을 둘러싼 전자 껍질(electron shell)의 수를 나타냅니다. 전자 껍질이란 원자핵 주변을 도는 전자들이 위치하는 층을 말하는데, 안쪽 층부터 1번 껍질, 2번 껍질 순으로 바깥으로 갈수록 늘어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껍질은 총 7개입니다. 세로줄은 '족(group)'이라 부르며, 가장 바깥 껍질에 있는 전자의 수가 같은 원소들의 묶음입니다. 바깥 전자가 화학 반응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는 걸 알면, 왜 같은 족끼리 성질이 비슷한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희토류, 원소 하나하나가 실제 세상과 이어져 있다는 것
원소 이야기에서 제가 직접 느낀 게 있습니다. 뉴스에서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리튬 같은 단어를 자주 접했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는 늘 뭉뚱그려 알고 있었습니다. 방송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 맥락이 잡혔습니다.
희토류란 주기율표에서 란타넘족(lanthanides)에 속하는 원소 무리로, 이름처럼 희박하게 분포하는 게 아니라 여러 원소가 한꺼번에 뒤섞인 채 땅속에 퍼져 있어 분리·정제 과정이 극도로 복잡합니다. 스마트폰 진동 모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풍력 발전기까지 거의 모든 첨단 산업에 쓰입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 이상을 담당하는 현실이 국제 자원 갈등의 핵심 배경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방송에서 셀레늄(selenium)이 복사기 원리와 연결된다는 설명도 예상 밖이었습니다. 셀레늄은 16족 칼코젠(chalcogen) 원소인데, 칼코젠이란 16족 원소 중 산소를 제외한 황·셀레늄·텔루륨 등을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셀레늄은 빛을 받으면 전기가 흐르는 성질이 있어, 복사기가 빛이 닿은 영역과 닿지 않은 영역을 구분해 인쇄하는 데 이 성질을 활용합니다. 비듬 샴푸에도 셀레늄이 들어간다는 사실까지 알고 나니, 이 원소가 새삼 달리 보였습니다.
베릴륨(beryllium)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2족 알칼리 토금속에 속하는 베릴륨은 금속 중 상대적으로 가볍고 열 팽창이 적다는 특성 덕분에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거울 재료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흡입 시 폐 질환을 유발하는 발암 물질로도 분류됩니다(출처: 국제암연구소 IARC). 주기율표를 안다는 건 단순히 원소 이름을 아는 게 아니라, 그 물질의 특성과 위험성을 함께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방송에서 화학 전공자인 배우 윤소희 씨가 "원소의 성질을 알면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한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제가 직접 이 방송을 보면서 느낀 것도 정확히 그 감각이었습니다.

멘델레예프가 빈칸을 채우지 않고 남겨둔 이유
주기율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러시아의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Dmitri Mendeleev)입니다. 그가 표를 만들던 시절, 알려진 원소는 63개였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두 가지 접근법을 각각 시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원자량(atomic mass) 순서로 줄 세우기, 다른 하나는 비슷한 화학적 성질끼리 묶기였습니다.
원자량이란 원자 하나의 질량을 나타내는 수치로, 탄소 12를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표기합니다. 멘델레예프는 이 두 방법을 동시에 적용하면서, 마치 카드 게임처럼 원소들을 배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줄이 맞지 않는 자리, 즉 빈칸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가 빈칸을 그냥 건너뛰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자리에 들어갈 원소가 반드시 존재할 것이고, 그 원소의 성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직접 예측해서 발표했습니다.
나중에 실제로 그 빈칸들이 채워졌을 때, 멘델레예프의 예측과 상당히 일치했습니다. 그게 주기율표를 단순한 정리 도구가 아니라 예측 도구로 만든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과학사 전체를 통틀어 꽤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멘델레예프의 첫 주기율표 이후 150년이 넘게 지나면서 표는 계속 채워졌습니다. 현재 주기율표에서 원소의 분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형 원소(representative elements): 1족, 2족, 13~18족. 화학적 성질이 뚜렷하고 예측하기 쉽습니다.
- 전이 원소(transition elements): 3~12족. 구리, 니켈, 아연 등 금속이 많고 특정 산업에 집중적으로 활용됩니다.
- 란타넘족(lanthanides): 희토류 원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 악티늄족(actinides): 우라늄, 플루토늄 등 방사성 원소가 포함됩니다.
과학 예능이 이렇게도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방송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과학 이야기가 이렇게 가볍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게 낯설었습니다. 딱딱한 강의 형식이 아니라, 출연자들이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질문하면서 내용이 쌓이는 방식이라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같이 배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중간중간 농담이 너무 길어지면서 흐름이 끊기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화학 이야기가 한창 재밌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새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아쉬웠습니다. 다만 그게 예능이라는 형식의 숙명이기도 하고, 딱딱한 강의보다는 훨씬 낫다는 점에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화학 공학(chemical engineering)이 수학과 물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설명도 제게는 새로웠습니다. 화학 공학이란 화학 지식을 산업 현장에 응용하는 학문으로, 반응 공정 설계나 소재 개발 같은 분야를 다룹니다. 화학을 잘하면 화학 공학도 잘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수학과 물리 기반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학창 시절 화학이 그냥 시험 과목이라고만 느껴졌던 건, 원소 하나하나가 실제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방송을 보고 나서야 그 연결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기율표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소 이름 암기보다 각 족(group)의 성질과 실제 활용처를 먼저 찾아보는 게 훨씬 재밌는 진입로가 될 것입니다.
참고: 원소, 주기율표를 알면 뭐가 좋아요? 모르면 손해! (feat. 윤소희 배우) [취미는 과학/49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dDte4j_lyww&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