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인골 고고학 (뼈 분석, 안정동위원소, 인위적 변형)

by 하일노트 2026. 6. 18.

박물관에서 유물을 볼 때, 저도 처음엔 금관이나 토기 같은 것들에만 눈이 갔습니다. 그 옆에 놓인 사람 뼈는 그냥 전시품 중 하나 정도로 스쳐 지나쳤고요. 그런데 뼈 하나가 그 사람의 나이, 성별, 식단, 심지어 고향까지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지난날 제가 흘려본 그 뼈들이 새삼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뼈 분석으로 복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

역사 공부를 오래 한 분들도 "역사란 문헌 기록을 읽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인골 고고학(bioarchaeology)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인골 고고학이란 유적에서 출토된 사람 뼈를 분석해 과거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특성을 복원하는 생물 인류학의 하위 분과입니다. 기존 역사 문헌이 왕이나 귀족 같은 지배층의 기록에 집중돼 있는 것과 달리, 뼈는 이름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담고 있습니다.

2007년 창녕 송현동 고분에서 발굴된 가야 시대 소녀 '송현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았고 사랑니가 막 솟기 시작한 상태였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사망 당시 나이를 10대 중반으로 추정했습니다. 여기서 성장판이란 뼈의 끝부분에 위치한 연골 조직으로, 이 부위가 완전히 닫혀야 뼈의 성장이 멈췄다고 판단합니다. 사지뼈 길이를 이용한 키 추정 공식을 적용해 150cm 중반의 신장도 계산해 냈고, 볼기뼈(치골) 형태를 통해 성별이 여성임을 확인했습니다. 볼기뼈는 골반 부위의 뼈로, 여성의 출산 기능 때문에 남성과 형태 차이가 뚜렷해 성별 추정에 가장 정확한 부위로 꼽힙니다.

제가 화학 분석 업무를 하다 보면 데이터 속 아주 작은 수치 차이에서 원인을 추적하는 작업을 자주 합니다. 인골 고고학도 본질적으로 같은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현이의 정강뼈와 종아리뼈에는 쪼그려 앉거나 무릎을 꿇는 행위를 반복했을 때 생기는 변형 흔적이 남아 있었고, 이 흔적과 무덤의 규모, 화려한 껴묻거리(부장품)를 종합해 그녀가 신분 높은 무덤 주인을 생전에 모신 순장자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뼈에서 읽은 자세 습관 하나가 신분을 특정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 셈입니다.

뼈를 통해 알 수 있는 핵심 정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성장판 상태와 사랑니 발달로 사망 시 연령 추정
  • 볼기뼈 또는 머리뼈 형태로 성별 추정
  • 사지뼈 길이와 인구 집단별 공식으로 신장 추정
  • 뼈 변형 흔적으로 반복적인 자세와 직업적 행위 유추
  •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식단 및 거주지 추적

안정동위원소와 인위적 변형이 말해주는 것

뼈가 담고 있는 정보는 형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화학 성분 분석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더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안정동위원소(stable isotope) 분석이 대표적입니다. 안정동위원소란 방사능을 띠지 않고 자연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는 동위원소로, 탄소·질소·황·산소·스트론튬 같은 원소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뼈에 남아 있는 이 원소들의 비율을 분석하면 그 사람이 어떤 곡물을 주식으로 먹었는지, 해산물을 즐겼는지, 아니면 내륙의 식단을 주로 했는지까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특히 스트론튬 동위원소 분석은 거주지 추적에 활용됩니다. 스트론튬은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로, 지역마다 지질 특성에 따라 그 비율이 다릅니다. 우리 몸에 칼슘처럼 축적되기 때문에, 치아에 쌓인 스트론튬 비율을 분석하면 그 사람의 출생지와 유년기 거주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치아 이외의 뼈에 축적된 스트론튬 비율은 사망 전 수년간 어디에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치아와 나머지 뼈의 비율이 다르면, 이 사람이 일생 중 거주지를 옮겼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 분석 방식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radiocarbon dating)과 함께 쓰입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이란 유기물에 남아 있는 탄소-14의 잔존량을 측정해 절대 연대를 계산하는 방법으로, 탄소-14가 5,730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드는 특성을 이용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원소 분석이 역사 해석과 결합되는 지점이 가장 설레는 부분입니다. 단순히 "이 뼈는 몇 년 됐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살다 죽었다"는 개인의 이동 경로까지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이런 분석은 부산 지하철 공사 중 발견된 임진왜란 동래성 전투 희생자들의 뼈 연구에서도 활용됐습니다. 당시 뼈에는 칼에 맞거나 조총 관통으로 생긴 외상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고, 치유 흔적이 전혀 없어 사인을 특정할 수 있었습니다.

뼈에 새겨지는 질병 흔적도 주목할 만합니다. 결핵, 나병, 매독은 뼈에 흔적을 남기는 대표적인 3대 전염성 질병입니다. 결핵은 폐에서 시작해 갈비뼈의 염증성 반응을 유발하고, 심해지면 척추 등뼈에 전이돼 뼈가 녹아 엉겨 붙는 양상을 보입니다. 국내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인 사천 늑도에서 결핵 감염 흔적이 있는 뼈가 발견된 것은, 번성했던 늑도 도시가 전염병으로 쇠퇴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로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또 한 가지 흥미롭게 본 부분은 인위적 변형이었습니다. 삼국 시대 김해 예안리 유적에서 출토된 머리뼈는 이마와 뒤통수가 납작하게 눌린 '편두' 풍습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머리뼈 조각 사이의 틈이 완전히 붙기 전, 생후 3개월부터 돌 반 무렵 사이에 돌 등으로 압력을 가해 머리 형태를 바꾼 것입니다. 이는 특정 계급이나 집단의 정체성을 표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는데, 뇌압 상승으로 인한 사망 위험까지 감수한 풍습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악 수술이나 광대뼈 축소 수술 같은 미용 목적의 뼈 수술 흔적은 수천 년 뒤 발굴되면 뚜렷하게 식별될 것이고, 실제로 신원 확인 과정에서 광대뼈 축소 수술 흔적이 결정적 단서로 작용한 사례도 있습니다. 뼈에 기록된 시대의 흔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인골 고고학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기록 없이 살다 간 대부분의 사람들, 그 삶의 조각들이 뼈 속에 남아 있고, 과학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이야기를 더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왕릉이나 고분 발굴은 후손의 정서나 문화재 보존 문제와 충돌할 수 있어 신중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발굴된 뼈들,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이야기는 역사책 어디에도 적히지 못했던 가장 솔직한 기록입니다. 다음에 박물관에 갈 기회가 생기면, 금관 옆에 조용히 놓인 뼈 앞에서 조금 더 오래 서 있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참고: 뼈에 이런 것도 나와 있나요?🦴 뼈 전문가가 모두 답해드립니다 (feat. 우은진 교수, 곽재식 교수) [취미는 과학/ 67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KPeYNnrutWU&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23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블로그 이름

<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