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꽤 오랫동안 '사람은 원래 착하다'는 쪽이었습니다. 회사에 들어갈 때도, 교회 청년부에서 함께 행사를 준비할 때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를 영장류 행동생태학 데이터로 파헤쳐봤습니다. 결론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습니다.

영장류가 인간의 거울인 이유
인간도 영장류입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영장류(靈長類, Primates)란 현재까지 약 500종이 확인된 분류군으로, 여기에는 원숭이, 유인원, 그리고 인간이 포함됩니다. 18세기 식물학자 린네가 이 그룹에 '최고의 종'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인데, 지금 보면 꽤 나르시시즘적인 작명이긴 합니다.
유인원에 속하는 종은 인간, 침팬지, 보노보, 오랑우탄, 고릴라, 긴팔원숭이 총 여섯 종입니다. 이 중 침팬지와 인간의 분기 시점은 약 600만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단백질 수준에서는 상당수가 거의 동일하고, 어떤 기준으로 비교하느냐에 따라 유전적 유사도는 80%에서 98%까지 다양하게 제시됩니다. 개나 고양이와의 차이에 비하면 침팬지는 사실상 사촌이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영장류를 연구하면 왜 인간 본성을 알 수 있을까요. 인간 본성은 사회화의 껍데기 아래 깊이 숨어 있어서, 교육과 문화가 개입하기 이전의 상태를 직접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야생 영장류는 그 껍데기가 없습니다. 행동생태학(Behavioral Ecology)이란 바로 이런 야생 상태에서 동물의 행동과 생태적 조건의 관계를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여기서 행동생태학이란, 단순히 동물 행동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생존과 번식에 어떤 이점을 주는지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분야를 말합니다. 인간 심리학에서 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본능적 패턴을 야생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서열은 본능인가, 필요인가
영장류 연구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이 서열 구조입니다. 침팬지 집단을 자연 상태에서 장기 관찰해보면 수컷은 수컷대로, 암컷은 암컷대로 1위부터 끝까지 서열이 촘촘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서열이 높은 개체만 좋은 먹이를 먹고, 수컷의 경우 서열이 높아야 짝짓기 기회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회사 생활에서 느낀 것과 이 데이터가 묘하게 겹쳤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네트워크와 눈치, 줄 세우기가 훨씬 큰 변수로 작동하더군요. 그게 제 착각이었다는 걸 시간이 꽤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침팬지의 서열 경쟁도 단순히 힘으로 결판나지 않습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은 저서 Chimpanzee Politics에서 침팬지의 서열 다툼이 연합 형성, 즉 '정치적 동맹'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상세히 기술했습니다(출처: Harvard University Press). 몸집만 크다고 1인자가 되는 게 아니라, 누구와 손을 잡느냐가 결정적입니다. 침팬지 사회에서 서열 경쟁의 핵심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체적 우위: 체력과 공격성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기본기
- 연합 구성: 다른 수컷들과 동맹을 맺어 수적 우위를 확보
- 가계 배경: 어미의 사회적 지위가 자식의 초기 서열에 영향
- 털 고르기(그루밍):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일상적 정치 행위
그루밍(Grooming)이란 상대방의 털을 골라주는 행동인데, 여기서 그루밍이란 단순한 위생 행위가 아니라 신뢰와 지지를 교환하는 사회적 화폐 역할을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서열이 정립되고 나면 낮은 개체가 높은 개체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높은 개체는 그 손을 살짝 물어 인사를 받아줍니다. 인간의 악수가 "나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시작됐다는 설과 구조적으로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서열이 만들어지는 걸까요. 의외로 답은 협력입니다. 집단 간 영역 다툼이 극렬한 침팬지 사회에서 내부 결속력이 없으면 외부 위협에 대응할 수 없습니다. 서열은 혼란을 줄이고 협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인 셈입니다. 이걸 알고 나서 회사의 위계 구조를 다시 바라봤더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합리하다고만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집단 유지를 위한 본능의 흔적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보노보가 보여준 다른 가능성
침팬지만 먼저 발견됐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꽤 음울한 방향으로 굳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침팬지와 200만 년 전 분기한 자매 종, 보노보(Bonobo)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유전적으로는 거의 동일한데 사회 구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게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침팬지는 갈등이 생기면 공격성으로 해소합니다. 다른 집단을 만나면 죽이기도 합니다. 반면 보노보는 갈등 상황에서 먼저 화해 행동을 시도합니다. 먹이를 발견했을 때도 서열 높은 개체가 독점하는 침팬지와 달리, 보노보는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나눠 먹습니다. 혈연 관계가 아닌 개체끼리 먹이를 자발적으로 나누는 행동은 영장류 중에서 인간과 보노보에게서만 확인됩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왔을까요. 먹이 자원입니다. 보노보의 서식지는 콩고강 남쪽으로, 먹이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천적인 고릴라와 영역을 공유하지 않습니다. 먹이 경쟁 압력이 낮으니 공격성보다 협력이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겁니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인간 사회만의 이야기가 아닌 셈입니다. 저는 교회 청년부에서 의견 충돌을 겪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서로 지쳐 있거나 여유가 없을 때는 감정이 더 쉽게 날카로워졌고, 식사를 같이 하고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을 때 오해가 풀렸습니다. 환경이 행동을 바꾼다는 게 동물 세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이런 이타적 행동은 팃포탯(Tit-for-Tat) 전략으로 설명됩니다. 팃포탯이란 게임 이론에서 도출된 협력 전략으로,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고, 상대가 배신하면 똑같이 대응하고, 다시 협력하면 함께 협력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복잡한 사회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영장류에게는 단기 이익보다 관계 유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 전략이 진화적으로 유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출처: PNAS(미국 국립과학원 회보)).
본성 너머의 선택, 인간만의 변수
영장류 연구를 통해 인간 본성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분명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서열 욕구, 공격성, 집단 내 결속, 화해 능력 같은 것들이 본능적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는 설명은 현실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설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이 있습니다. 마음 이론이란 타인의 믿음, 의도, 감정을 자신의 것과 구별해 이해하는 인지 능력을 말합니다. 침팬지도 초보적인 수준에서 이 능력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인간은 이것을 언어와 문화, 도덕 체계와 결합시켜 훨씬 복잡한 수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저 역시 돌아보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가족에게 괜히 예민하게 굴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순간만 보면 충분히 '악한 본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민망해서 먼저 사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선택이 본능인지 의지인지,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 행동을 동물 본성만으로 환원하면 놓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누군가는 타인을 착취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나눕니다. 이 차이를 본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장류 연구자들도 이 점을 인정합니다. 인간은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본성이 어떤 방향으로 표현될지는 교육과 문화, 개인의 가치 선택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유연성(Behavioral Flexibility), 즉 환경에 따라 행동 양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영장류 전체의 특징이라면, 인간은 그 유연성을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이 차이는 결국 어떤 환경을 선택하고, 어떤 관계 안에 머무느냐에서 갈렸습니다. 보노보가 먹이 풍요로운 환경에서 협력을 선택했듯, 인간도 어떤 '환경'을 선택하느냐가 본성의 표현 방식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인간이 영장류라고 하는데, 그럼 원숭이와 뭐가 다른 건가요?
A. 원숭이와 유인원은 꼬리의 유무로 구분됩니다. 꼬리가 없는 그룹이 유인원이고, 인간은 여기에 속합니다. 원숭이보다 유인원이 인간과 훨씬 가까운 친척이며, 침팬지와 인간은 약 6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분기했습니다. 유전자 수준에서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 영장류 연구가 인간 본성 탐구에 유효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Q. 침팬지와 보노보가 이렇게 다른 이유가 뭔가요?
A. 가장 유력한 설명은 먹이 자원의 풍부도와 종간 경쟁 압력 차이입니다. 침팬지는 고릴라와 영역을 공유하며 먹이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 살고, 보노보는 그런 경쟁 압력이 적습니다. 결과적으로 침팬지는 공격적 서열 경쟁이, 보노보는 화해와 협력이 더 유리한 전략으로 진화했습니다. 환경이 같은 유전자를 전혀 다른 사회 구조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Q. 인간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과학적으로 결론이 났나요?
A. 현재까지 행동생태학이나 진화심리학에서 "선하다" 또는 "악하다"는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공격성과 협력 능력을 동시에 갖춘 종으로, 어떤 환경과 조건에 놓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이 나온다는 쪽으로 연구가 수렴되고 있습니다. 선과 악의 기준 자체가 문화와 사회가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시각도 학계 일부에서 제기됩니다.
Q. 영장류 연구를 일상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나요?
A. 서열 갈등이나 집단 내 긴장이 생겼을 때, 그것이 어느 정도 본능적인 반응임을 이해하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팃포탯 전략처럼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관계 관리에 실질적으로 적용해볼 수 있는 전략입니다. 환경이 행동을 바꾼다는 것도, 어떤 집단에 속할지를 선택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결론
영장류 연구 데이터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서, 성선설도 성악설도 모두 절반짜리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서열을 다투는 침팬지의 면모도 있고, 나눔으로 갈등을 푸는 보노보의 면모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강하게 나타나느냐는 처한 환경과 선택한 관계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꽤 실용적인 통찰입니다. 누군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냐'보다 '저 사람이 처한 환경이 어떤 상태냐'를 먼저 물어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됐습니다. 본능은 출발점일 뿐, 어디로 향할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라는 게 지금 저의 결론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프란스 드 발의 영장류 연구 저작들을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BqUkkYEIlo&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