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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후회, 반사실적 사고, 사랑과 의지, 뒷담화)

by 하일노트 2026. 5. 9.

솔직히 저는 후회를 못 하는 사람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정을 내리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강한 사람의 태도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뇌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후회는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정교한 학습 시스템 중 하나였습니다.

후회는 왜 하는가, 그 안의 뇌과학

후회를 많이 하는 자신을 다그쳤던 적이 꽤 많았습니다. 왜 이미 지난 일을 자꾸 들춰내냐고. 그런데 이게 뇌 구조상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꽤 충격이었습니다.

뇌과학에서는 이 현상을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반사실적 사고란 실제로 일어난 일 대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 보는 능력을 말합니다. 단순히 과거를 곱씹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뇌가 스스로 작동시키는 준비 과정입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해마(Hippocampus)와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과거를 회상할 때와 미래를 상상할 때 동일하게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해마란 기억을 저장하고 꺼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영역으로, 시간과 장소, 상황을 입체적으로 기억하는 기관입니다. 즉 뇌 수준에서 과거와 미래는 같은 메커니즘을 씁니다. 기억하는 것과 예측하는 것이 사실상 같은 뇌 기능이라는 말입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표현이 시적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후회가 지나치면 반추(Rumination) 상태로 빠질 수 있습니다. 반추란 소가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듯 과거의 불쾌한 기억을 계속 되풀이하는 사고 패턴으로, 이 상태가 길어지면 우울 증상과 연결되기도 합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 후회는 적당히 하면 학습이 되고, 과하면 독이 된다는 게 뇌과학의 결론입니다.

저도 선택을 앞두고 지나치게 오래 고민했다가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건 반추였지 성찰이 아니었습니다. 둘의 차이는 결국 방향입니다. 과거를 향하면 반추, 미래를 향하면 학습입니다.

후회와 관련해 뇌에서 함께 이해해야 할 개념이 하나 더 있습니다. 현재 편향(Present Bias)입니다. 현재 편향이란 미래의 이득보다 지금 당장의 만족을 훨씬 크게 느끼는 심리적 경향으로, 다이어트 중에 빵을 집어 드는 행동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뇌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 예측이 현재의 욕구를 이기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인간의 계획이 이상적인 상황을 전제로 세워지기 때문에, 배가 고프거나 피곤한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기 쉽습니다.

핵심 포인트:

  • 반사실적 사고는 나약함이 아니라 미래를 대비하는 뇌의 학습 시스템이다
  • 해마와 전전두엽은 과거 회상과 미래 상상 시 동일하게 활성화된다
  • 후회가 과도해지면 반추로 이어져 우울 증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 현재 편향 때문에 계획은 항상 현실보다 이상적으로 만들어진다

사랑과 의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 것들

사랑을 하면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면 흔히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 뇌 영상 연구를 보면 꽤 정확한 묘사입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전전두엽의 기능이 실제로 저하되고, 선조체(Striatum)의 도파민 회로가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선조체란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구조로, 보상과 동기 부여, 습관 형성에 관여하는 영역입니다. 이 영역이 활성화되면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감각, 즉 원팅(Wanting)이 폭발적으로 올라갑니다.

여기서 원팅과 라이킹(Liking)은 다른 회로입니다. 라이킹은 무언가를 실제로 즐기고 좋아하는 감각이고, 원팅은 그것을 얻고 싶은 욕구입니다. 연애 초기에는 이 두 가지가 같이 올라가지만, 중독적 상태에서는 라이킹은 줄어들고 원팅만 남는 상태가 됩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짝사랑이 이 상태와 꽤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의지는 뭘까요. 뇌과학에서는 오랫동안 전전두엽이 욕구를 억제하는 구조, 즉 아래에서 올라오는 충동을 위에서 눌러주는 이분법적 구조로 설명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구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의지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이라는 관점이 대세입니다. 저는 이 설명이 훨씬 현실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의지를 유지시켜 주는 환경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에 가깝다는 거니까요.

실제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의 의사 결정이 완전한 합리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휴리스틱이란 복잡한 정보를 모두 처리하는 대신 단순한 경험칙이나 직관에 의존해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인지적 지름길을 말합니다. 이 과정에서 편향과 오류가 생기는 것은 버그가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뇌의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출처: 카너먼 행동경제학 연구 정리, 프린스턴 대학교).

뒷담화의 과학적 설명

뒷담화를 과학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평소에는 뒷담화를 나쁜 행동으로만 봤는데, 집단 결속력을 높이고 사회적 학습을 가능하게 하는 진화적 기능이 있다는 설명은 솔직히 불편하면서도 납득이 됐습니다. 물론 납득과 정당화는 다른 문제입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상황을 돌아봐도, 뒷담화가 연대감을 만들어 준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동시에 피해자를 만들어 낸 경우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진화적 이유가 있다고 해서 윤리적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의지의 문제라고 믿었던 행동들이 사실은 환경 설계의 문제였다는 걸 직접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야식을 끊으려고 노력하다 실패를 반복했는데, 냉장고에서 특정 음식을 치웠더니 자연스럽게 습관이 바뀌었습니다. 의지를 믿기보다 환경을 설계하는 쪽이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과학으로 인간을 설명하는 작업은 결국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뇌과학은 행동의 메커니즘을 보여주지만, 그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여전히 각자의 몫입니다. 후회도, 사랑도, 의지도 뇌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라고 말하기엔 인간이 너무 넓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라는 말이 결국 맞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온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스스로를 조금 더 너그럽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회할 줄 알고, 바보 같은 선택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계획을 세우는 것. 그게 인간이고, 그게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참고: 인간은 대체 왜 이럴까? 과학적으로 대답해 드립니다 (feat. 우충완 교수) [취미는 과학/ 36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IpJ8eMRzFSw&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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