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이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가 공식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파고들어 보니 진짜 어려운 건 수식이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철학적 충돌이었습니다.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회 솔베이 회의는 그 충돌이 가장 날카롭게 터져 나온 현장이었고, 그 논쟁의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저는 양자역학이 왜 100년 가까이 여전히 논쟁 중인지를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솔베이 회의, 지구 최강의 정모에서 벌어진 일
1927년 10월 24일, 브뤼셀 메트로폴리탄 호텔에 29명의 물리학자와 화학자가 모였습니다.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당시 교과서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 한자리에 있었고, 참석자 중 노벨상 수상자 비율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사진을 가리켜 "지구 최강의 정모"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이 사진을 본 건 오래 전이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오래된 흑백 사진이 아니라, 물리학의 방향 자체를 결정한 토론이 저 자리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와 닿았습니다.
이 회의의 표면적 주제는 광자와 전자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두 이론이 충돌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와 막스 보른이 함께 정리한 행렬 역학(matrix mechanics)과 에르빈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wave mechanics)이 그것입니다. 행렬 역학이란 양자 시스템의 물리량을 행렬이라는 수학적 구조로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익숙한 숫자 하나로 물리량을 기술하는 대신, 행렬이라는 표 형태의 수학 객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행렬의 특성상 A×B와 B×A의 결과가 달라지는데, 이것이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 Uncertainty Principle)의 수학적 토대가 됩니다. 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원리로, 두 값의 불확정도 곱이 플랑크 상수(h)를 일정 수준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수식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아인슈타인이 반격에 나섰습니다. 그가 집착한 핵심은 인과율(causality)이었습니다. 인과율이란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고, 그 인과 관계는 시공간을 통해 연속적으로 연결된다는 원칙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세울 때도 이 인과율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양자역학은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전자가 에너지를 받아 높은 에너지 준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언제 내려올지는 "순전히 확률의 문제"라는 코펜하겐 해석의 주장이 아인슈타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대립 구도를 이해하고 나면, 양자역학을 둘러싼 거의 모든 철학적 논쟁이 한결 명확하게 보입니다.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 진영이 충돌한 핵심 쟁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과율: 자연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하는가 (아인슈타인 측) vs. 관측 가능한 확률적 예측으로 충분하다 (보어 측)
- 불확정성의 본질: 인간 측정 기술의 한계인가 vs. 자연 자체의 본질적 특성인가
- 이론의 완결성: 양자역학은 현재 완벽한가 vs. 더 깊은 설명이 필요한 미완성 이론인가

코펜하겐 해석의 실용주의, 그리고 남겨진 찝찝함
보어는 이 논쟁을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로 정리했습니다. 상보성 원리란 전자 같은 양자 입자는 어떤 실험 상황에서는 입자처럼, 또 다른 상황에서는 파동처럼 행동하며, 이 두 성질은 상호 배타적이지만 서로를 보완한다는 개념입니다. 빛을 슬릿(slit, 좁은 틈)에 통과시키면 파동 간섭 무늬가 나타나지만, 광자 하나하나를 검출기로 측정하면 입자처럼 점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보어의 주장은 "입자냐 파동이냐를 따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은 보어를 중심으로 한 그룹이 정립한 양자역학 해석 방식입니다. 여기서 코펜하겐 해석이란, 측정 행위 이전에 입자의 상태는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측하는 순간 비로소 하나의 상태로 '붕괴'된다는 입장입니다. 이 해석은 실험 결과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고, 이후 수십 년간 물리학 교과서의 표준 해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을 공부하면서 솔직히 찝찝함을 느꼈습니다. "측정 전 상태를 묻지 말라"는 태도는 매우 실용적이지만, 과학이 단지 예측 도구에 그쳐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려는 학문이고, 아인슈타인이 끝까지 문제 제기를 멈추지 않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은 솔베이 회의 이후 양자역학이 틀렸다는 주장은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론의 불완전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고 실험을 계속 제시했고, 1935년에는 보리스 포돌스키, 나탄 로젠과 함께 EPR 역설(EPR paradox)을 발표했습니다. EPR 역설이란 두 입자가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하나를 측정하면 다른 하나의 상태가 즉각 결정된다는 '얽힘(entanglement)' 현상이 국소성(locality) 원칙, 즉 물리적 영향은 빛의 속도를 넘을 수 없다는 원칙을 위반한다는 논증입니다. 이후 1960년대 존 벨의 벨 부등식(Bell's inequality) 검증 실험들이 진행되었고, 현재까지의 실험 결과는 코펜하겐 해석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물리학회(APS)).
양자 기술의 측면에서도 이 논쟁의 유산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자 얽힘과 중첩(superposition) 현상을 제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양자 컴퓨터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중첩이란 양자 입자가 관측 전에 여러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는 특성을 말하며, 이를 활용하면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연산을 병렬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구글은 2019년 자사의 양자 프로세서가 기존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연산을 200초 만에 수행했다고 발표했습니다(출처: 네이처(Nature)). 코펜하겐 해석이 "왜"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수학 체계 위에서 실제 기술이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논쟁을 따라가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과학자들이 서로의 주장을 날카롭게 반박하면서도, 상대방의 논리가 정확히 어디서 무너지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했다는 점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사고 실험을 보어가 밤새 분석해 반박하고,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다시 맞붙었던 그 과정이 결국 이론을 더 정밀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양자역학은 지금도 완성된 이론이 아닙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의 통합, 즉 중력을 양자 이론의 틀로 설명하는 양자 중력 이론(quantum gravity theory)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문제를 하나의 정답으로 닫으려 했다면 이 질문은 진작에 소멸했을 것입니다. 아직 열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과학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론을 접하든 "왜 그렇게 되는가"를 끝까지 묻는 태도를 잃지 않는 것, 그게 제가 이 논쟁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입니다.
참고: [취미는 과학/ 확장판] 18화 양자역학, 데뷔 무대는 어땠나? (feat. 이상욱 교수) :
https://www.youtube.com/watch?v=HKxQ4A_QgY8&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