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96%는 우리가 모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별이 저렇게 많고, 은하가 저렇게 넓은데, 그게 고작 4~5%라니. 그런데 그 말이 맞습니다. 오히려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서야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이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물리학이 직면한 가장 진지한 문제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있다는 걸 어떻게 믿나요
처음 암흑물질 이야기를 접하면 거의 모두가 같은 의문을 갖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걸 어떻게 믿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근데 이 질문이 사실 과학적으로 틀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질문이 암흑물질 연구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다크 매터(Dark Matter)는 한국어로는 '암흑물질'이라고 번역되지만, 영어 원어의 뉘앙스는 '어둡다'는 뜻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인비저블 매스(Invisible Mass), 즉 보이지 않는 질량체라고 불렸습니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핵심은 전자기파 등 어떤 관측 수단으로도 검출되지 않지만 질량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 개념이 처음 등장한 건 1930년대입니다.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가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관측하던 중 은하 회전 속도가 예측값보다 훨씬 빠르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광도 질량, 즉 빛의 세기로 추산한 질량과 역학 질량, 즉 실제 운동 속도에서 역산한 질량 사이에 수백 배 차이가 났습니다. 여기서 광도 질량이란 별처럼 빛을 내는 물체의 밝기를 통해 그 질량을 추정하는 방식이고, 역학 질량이란 뉴턴 역학 공식으로 회전 속도와 중력을 바탕으로 계산한 실질적인 질량을 말합니다.
문제는 츠비키가 워낙 독불장군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는 점입니다. 학계에서 신뢰를 얻지 못했고, 이 발견은 40년 가까이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신뢰가 없으면 묻힌다는 건 과학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주 전체 에너지 밀도
40년이 지난 1970년대,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안드로메다 은하의 회전 속도를 측정하다가 똑같은 이상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그는 여성 워킹맘이라는 이유로 주류 연구 주제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이드 과제로 받은 연구에서 우주를 뒤흔드는 데이터를 얻은 겁니다.
베라 루빈은 처음에는 암흑물질이라는 개념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물질을 상정하는 건 과학자 본능에 맞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다른 은하들도 측정했습니다. 결과는 같았습니다. 수십 개 은하의 회전 속도가 모두 같은 패턴을 보였습니다. 보이는 물질만으로는 이 속도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표준 우주론 모형인 ΛCDM(람다-차가운 암흑물질) 모형에 따르면 우주 전체 에너지 밀도의 구성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일반 물질(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 약 4~5%
- 암흑물질(질량은 있지만 전자기적 상호작용 없음): 약 27%
- 암흑에너지(정체 미상의 에너지 형태): 약 68%
제가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허탈함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관측하고 연구해온 별과 은하, 그 모든 것이 전체의 5%도 안 된다는 뜻이니까요. 이 수치는 현재 NASA와 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 위성 관측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니다(출처: NASA).

윔프를 찾아 지하 1000m로
암흑물질의 유력 후보 입자가 윔프(WIMP)입니다. 여기서 WIMP란 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의 약자로,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를 의미합니다. 이름에 '약하게'가 들어간 이유가 중요합니다.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중력과 약력(弱力)을 통해 아주 드물게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우리 손바닥을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통과하고 있지만, 워낙 상호작용 확률이 낮아서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 윔프를 실험적으로 탐색하려는 시도가 강원도 정선 예미산 지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미랩(YemiLab)은 예미산 아래 지하 약 1000m에 위치한 지하 실험시설로, 현재 IBS(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팀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왜 굳이 지하 1000m냐고 묻는다면, 뮤온(Muon) 때문입니다. 뮤온이란 우주에서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가 대기권에 충돌할 때 생성되는 2차 입자로, 지표면에서는 손바닥 크기 면적당 매초 하나씩 통과할 만큼 흔합니다. 이 뮤온이 검출기 안 물질과 반응하면 중성자를 만들어내고, 그 신호가 윔프 신호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지하 1000m에서는 하루 뮤온 도달 수가 단 두 개 수준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그 방해 요소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예미랩 관련 자료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건 검출기 주변을 납으로 감싸는 방식이었습니다. 납의 밀도는 약 11.3g/㎤로 일반 암석 밀도의 약 네 배에 달하기 때문에, 같은 차폐 효과를 내기 위해 훨씬 얇은 두께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내부 작업 시 일반 조명 대신 빨간색 조명만 씁니다. 가시광선 중 파장이 가장 긴 빨간빛이 검출기에 전달하는 에너지가 가장 낮기 때문입니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과학자들의 집요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예미랩 전체 면적은 약 1만 제곱미터이며, 실제 실험 가용 공간은 3000제곱미터, 독립 실험실 16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출처: IBS 기초과학연구원).
아직 못 찾았다는 게 실패가 아닌 이유, 액시온
많은 분들이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찾았는데 왜 아직도 못 찾았냐, 그럼 없는 거 아니냐?"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LUX-ZEPLIN 실험처럼 정밀하게 설계된 대형 검출기도 아직 윔프 신호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 보면 '못 찾았다'는 결과도 데이터입니다. 특정 질량 범위, 특정 상호작용 단면적 영역에서 윔프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건, 탐색 가능 영역을 점점 좁혀가는 과정입니다. 전 세계 실험팀들은 이 가능 영역을 지도처럼 그려가면서 아직 탐색하지 않은 구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윔프와는 별개로 액시온(Axion)이라는 또 다른 암흑물질 후보 입자도 활발히 탐색 중입니다. 액시온이란 강한 핵력(Strong Force)의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제안된 초경량 입자로, 윔프와는 질량과 상호작용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흥미롭게도 액시온 탐색 분야에서는 현재 우리나라가 전 세계 선두권에 있습니다. 윔프와 액시온, 두 후보를 동시에 탐색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곳이 예미랩이기도 합니다.
과학이 아름다운 이유 중 하나는, 모른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암흑물질이 없으면 현재 우주의 은하 분포와 구조 자체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암흑물질이 초기 우주에서 중력 씨앗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반 물질이 그 주변으로 뭉쳐 별과 은하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현재 우주론의 표준적인 이해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빛나는 우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위에 세워진 셈입니다.
이 사실이 저는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우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것이 5%고 나머지는 아직 이름도 정체도 모른다는 게요. 그 모름이 불안이 아니라 계속 연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도요. 암흑물질을 공부한다는 건 결국 세상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참고: 지하 1,000m에서 찾은 우주 탄생의 비밀, '암흑 물질'의 정체를 공개합니다 (feat. 소중호 박사) [취미는 과학/ 38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F7H44xMgXMg&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