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10~15년, 비용은 1조~5조 원이 든다고 합니다. 아프면 당연하게 꺼내 먹던 알약이 그 긴 시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저도 최근에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약이 우리 몸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바이오의약품 시대가 왜 지금 주목받는지 정리해봤습니다.

약은 어떻게 아픈 곳을 찾아가는가
두통약을 먹으면 왜 두통만 낫는 걸까요? 저도 오래 궁금했던 부분입니다. 사실 답은 반대입니다. 약은 아픈 부위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퍼진 뒤 활성화된 곳에서 작용합니다.
통증이 생기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어디서든 염증이 발생하면 사이클로옥시게나제(COX)라는 효소가 활성화됩니다. 여기서 COX란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통증 유발 물질을 합성하는 효소로, 이 물질이 신경을 자극해 통증 신호를 만들어냅니다. 진통제는 이 효소의 기능을 차단해 통증 물질 생성 자체를 막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렇다면 아스피린이 두통에도, 치통에도 다 듣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COX 효소는 두통이 있는 머리 속에도, 치통이 있는 잇몸 조직에도 모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약이 온몸을 돌다가 활성화된 효소를 만나는 순간 결합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부작용은 왜 생길까요? 효소는 3차원 구조를 가진 단백질입니다. 약도 그 구조에 딱 맞도록 설계된 분자입니다. 문제는 우리 몸에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단백질이 수없이 많다는 점입니다. 목표로 삼은 효소를 온타겟(on-target)이라 하고, 비슷한 구조 때문에 잘못 결합하는 경우를 오프타겟(off-target)이라 부릅니다. 오프타겟이란 약이 원래 목표가 아닌 단백질에 결합하는 현상으로, 이것이 곧 부작용의 원인이 됩니다.
약의 발전 단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세대 천연물 의약품: 식물이나 동물에서 직접 추출한 약물 (예: 아스피린의 모태인 버드나무 껍질 성분)
- 2세대 합성 의약품: 화학적으로 합성한 소분자 약물 (예: 아스피린, 타이레놀)
- 3세대 바이오의약품: 단백질, 유전자, 세포를 활용한 약물 (예: 인슐린, 항체치료제)
현재 전 세계 블록버스터 의약품, 즉 연간 매출 1조 원 이상의 약 중 약 50%가 이미 바이오의약품으로 채워져 있습니다(출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이 비중은 앞으로 70~80%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이 비싼 이유, 그리고 임상시험의 현실
바이오의약품이 대세라는 건 알겠는데, 왜 이렇게 비싼 걸까요? 여기서 핵심 차이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스피린 같은 합성 의약품은 소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입니다. 소분자 화합물이란 화학적으로 단순하게 합성 가능한 분자량이 작은 약물로, 대량 생산이 쉽고 단가가 낮습니다. 반면 바이오의약품은 단백질이나 항체처럼 구조가 복잡한 고분자 물질이라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해 만들어야 합니다. 공정이 복잡하고 품질 관리도 까다롭기 때문에 제조 단가 자체가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극단적인 사례도 있습니다. 희귀 혈액질환 치료를 위해 승인된 유전자치료제(gene therapy)의 경우 1회 투여 비용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자치료제란 손상되거나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정상 유전자를 삽입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으로, 이론적으로는 단 한 번의 투여로 완치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환자 수가 극소수인 희귀질환은 대량 생산으로 단가를 낮추기 어렵고, 결국 가격이 일반 환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이 지점에서 기술의 발전이 공평하게 혜택을 주지 못하는 현실이 생깁니다.
저도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개발에 성공했지만 가격 때문에 실질적으로 쓸 수 없는 약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상시험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이란 개발된 약물 후보를 사람에게 투여하여 안전성과 효능을 단계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1상에서는 소수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보고, 2상에서는 환자 집단에서 효능을 확인하며, 3상에서 대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최종 검증합니다. 비임상 단계를 통과하고 임상에 진입하는 약물 후보가 최종 승인까지 도달하는 확률은 10% 내외에 불과합니다(출처: 미국 식품의약국(FDA)).
저도 박사 과정에서 신약 후보 물질을 연구한 적 있는데, 임상 진입 자체가 얼마나 높은 관문인지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비임상까지 다 완료하고 나서도 결국 임상에 못 가고 접혔을 때의 허탈함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미디어에서 "기적의 치료제 임상 진입"이라는 뉴스가 이후에 조용해지는 이유도 결국 이 확률 때문입니다.
반면 이런 긴 과정 끝에 성공한 약이 만들어낸 변화는 놀랍습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로 알려진 글리벡(Gleevec)이 대표적입니다. 변형된 단백질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해 만든 이 표적치료제(targeted therapy) 덕분에, 과거 드라마 속 불치병이었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이제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성공이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습니다. 정밀의학이란 개인의 유전자 및 단백질 특성에 맞춰 최적화된 치료법을 제공하는 의학적 접근 방식입니다.
결국 약이라는 것은 단순히 증상을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몸을 이해해온 역사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프기 전에 예측하고 예방하는 쪽으로 의학이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도 충분히 공감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치료제 접근성의 불균형 문제가 함께 해결되지 않으면 기술의 발전이 절반짜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이오의약품에 관심이 생겼다면,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바이오의약품 허가 현황 자료를 찾아보시는 것도 현실감 있는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약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약을 이해하려면 단백질을 알아야 한다? 원리부터 알려드림 (feat. 김성훈 교수) [취미는 과학/ 60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5J3wzjAUwlI&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