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복강경 수술을 받던 날, 저는 수술실 밖에서 두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막상 회복실에서 나온 분의 배에는 손톱만 한 구멍이 세 개뿐이었고, 사흘 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그냥 "요즘 기술이 좋아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수술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야 그 작은 구멍 하나에 얼마나 긴 시간이 쌓여 있는지 실감했습니다. 지혈법 하나를 바꾸는 데 수백 년, 마취 한 번 성공하는 데 또 수백 년. 우리가 당연하게 받는 치료들이 사실은 결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끓는 기름에서 실 묶기까지 — 지혈법의 진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지혈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늦게 자리를 잡았을 줄은 몰랐거든요. 구석기시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유골에서 발견된 종아리뼈 절단 흔적이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수술 기록입니다. 약 3만 1천 년 전 이야기입니다(출처: Nature). 그 이후에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가장 많이 사용한 지혈 방법은 달궈진 인두로 상처를 지지거나 펄펄 끓는 기름을 부어 넣는 방식이었습니다.
결찰술(ligation)이 등장한 건 16세기,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쟁 때입니다. 여기서 결찰술이란 출혈이 일어나는 혈관을 실로 직접 묶어 피를 멈추게 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프랑스 군의관 앙브루아즈 파레가 이 방법을 고안한 계기가 꽤 아이러니합니다. 전장에서 환자가 너무 많아 끓는 기름이 동이 나버렸고, 달걀노른자와 장미기름, 테레핀유를 섞어 굳힌 연고를 대신 발랐더니 기름으로 지진 환자보다 오히려 회복이 빨랐던 것입니다. "없어서 바꿨더니 더 좋았다"는 이 우연이 수천 년 된 관행을 뒤집었습니다.
같은 시기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파도바 대학에서 사형수 시체를 해부해 『인체 구조에 관하여』를 펴내면서 혈관의 위치와 구조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됩니다. 그전까지는 갈레노스처럼 돼지나 소를 해부하고 사람도 비슷하겠거니 추측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실제로 갈레노스는 돼지갈비뼈가 좌우 비대칭이라는 이유로 남성도 갈비뼈가 하나 적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사람을 직접 열어 보니 양쪽 모두 12개씩으로 똑같았습니다. 이처럼 해부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결찰술도, 이후의 수술 기술도 제자리걸음이었을 것입니다.
피를 보충하는 일 — 수혈의 험난한 역사
지혈과 함께 반드시 따라오는 문제가 수혈입니다. 피를 멈추는 것만큼이나 빠져나간 피를 채워 넣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제가 처음 수혈의 역사를 접했을 때 가장 놀랐던 부분은, 동물 피를 사람에게 주입하는 시도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665년 영국의 로워가 개와 개 사이에서 수혈 실험에 성공하자, 불과 2년 뒤인 1667년 프랑스 의사 드니가 송아지 피를 사람에게 직접 수혈했습니다. 당시에는 순수한 동물의 피가 노화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사망이었고, 드니는 재판까지 받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약 200년간 수혈은 사실상 금지됩니다.
1818년 영국 의사 제임스 브렌델이 사람의 피를 산모에게 수혈해 약 60~70%의 성공률을 기록하면서 금지의 시대가 끝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가 죽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혈액형이었습니다. 혈액형이 과학적으로 정리된 것은 오스트리아 의사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에 A형, B형, C형(현재의 O형)을 발견하면서부터입니다. 항응고제(anticoagulant)의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수혈할 피는 뽑자마자 바로 주사기에 옮겨 그 자리에서 즉시 주입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했습니다. 여기서 항응고제란 혈액이 굳는 것을 막아 보관과 수혈이 가능하게 해주는 물질로, 현재는 헤파린이 대표적으로 사용됩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혈액형 교차검사와 항응고제 활용이 결합된 근대적 수혈법이 비로소 자리를 잡게 됩니다(출처: WHO).
- 1665년: 개 간 수혈 최초 성공 (로워, 영국)
- 1667년: 동물 피→사람 수혈 시도 → 사망, 약 200년간 수혈 금지
- 1818년: 사람 간 수혈 재시도, 60~70% 성공 (블렌델, 영국)
- 1901년: A·B·O 혈액형 발견 (란트슈타이너, 오스트리아)
- 1907년~: 혈액형 교차검사 기반 안전한 수혈 시작 (오텐베르크, 미국)
의식 없이 칼을 댄다는 것 — 마취의 탄생
제가 치과에서 리도카인 주사를 맞고 아랫니를 뽑던 날, 마취가 안 된 상태에서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불과 200년 전까지 모든 사람이 실제로 겪었던 현실이었습니다.
마취가 없던 시절 절단 수술은 외과 의사가 술 한 병을 본인이 마시고, 나머지 한 병을 환자에게 먹인 뒤, 네 명이 팔다리를 붙잡고 시작했습니다. 당시 명의의 기준은 단 하나, 빠르기였습니다. 영국의 외과 의사 리스턴은 절단 수술 사망률이 일반적인 60%에서 15%로 떨어질 만큼 빠른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 역시 수술 도중 조수의 손가락을 잘라냈고 조수도 패혈증으로 사망, 환자도 폐혈전으로 사망, 공개 수술을 구경하던 관객도 충격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한 번 있었습니다. 세 명이 죽어 "사망률 300%짜리 수술"이라 불리는 일화입니다.
에테르(ether)가 마취 목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40년대 미국에서였습니다. 에테르란 탄소 화합물 중간에 산소 원자가 결합된 유기 화합물로, 흡입 시 의식을 몽롱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습니다. 합성 자체는 1540년경에 이미 알려져 있었으나 300년간 오락용으로만 쓰이다가 뒤늦게 의료에 적용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클로로폼(chloroform)이 더 빠르게 확산됐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여덟 번째 자녀 출산 때 클로로폼 흡입 마취를 적용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왕실의 채택이 곧 사회적 공인이 된 셈입니다. 다만 클로로폼은 농도 조절에 실패하면 심장이 멎는 부작용이 있어 이후 사용이 줄었고, 현재는 국소 마취에 리도카인, 전신 마취 도입에 프로포폴(propofol)이 주로 쓰입니다. 프로포폴은 "우유 주사"라고도 불리며, 이전에 사용되던 펜토탈보다 각성 후 두통이 적고 회복감이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작은 구멍, 긴 역사 — 복강경 수술과 로봇 수술
가족의 복강경 수술 흉터가 왜 그렇게 작았는지, 이제는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복강경 수술(laparoscopic surgery)이란 배를 크게 열지 않고 1~2cm 정도의 작은 구멍 몇 개만 뚫어 카메라와 수술 기구를 삽입해 내부를 보면서 진행하는 최소 침습 수술(minimally invasive surgery)을 말합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외과 교과서에는 "크게 절개하는 의사가 잘하는 의사"라는 표현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이 문장은 "작게 절개하는 의사가 잘하는 의사"로 바뀌었습니다.
복강경이 가능해진 핵심 기술은 CCD(Charge-Coupled Device)입니다. CCD란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디지털 영상을 만드는 센서로, 1980년대 이후 카메라 소형화를 이끈 핵심 부품입니다. 이 센서 덕분에 복강 안을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서 수술하는 방식이 가능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진단 목적으로 구멍 하나를 뚫어 들여다보는 용도였다가, 구멍을 하나 더 추가해 기구를 넣으면서 수술로 발전했습니다. 복강경 수술의 자유도는 5가지입니다. 좌우, 상하, 전후 이동에 회전, 그리고 집기 동작이 각각 하나의 자유도를 이룹니다.
로봇 수술은 이 자유도 문제를 한 단계 더 해결했습니다. 복강경 기구는 5자 유도로 뻣뻣하게 움직이지만, 로봇 팔은 관절이 추가돼 7자 유도 이상으로 움직입니다. 또한 수술자의 손 떨림을 실시간으로 보정하고, 카메라를 입체 3D로 보여주며, 좌우 반전 문제를 소프트웨어로 자동 교정해 줍니다. 국내에서는 2005년 7월 처음으로 로봇 수술이 시행되었고, 이후 전체 수술의 약 60%가 복강경이나 로봇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수준까지 보급됐습니다. 로봇 수술이 아직은 의사의 동작을 복제하는 마스터-슬레이브 방식이라는 점에서 완전 자율 수술과는 다르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구분이 오히려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계가 판단하는 수술과, 의사가 판단하되 기계가 정확하게 구현하는 수술은 책임의 무게가 다르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Q. 인류 최초의 수술은 무엇인가요?
A.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수술 흔적은 약 3만 1천 년 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에서 출토된 유골입니다. 왼쪽 종아리뼈 아랫부분이 절단된 형태인데, 고고학적 분석 결과 수술 후에도 상당 기간 생존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절단 후 감염 없이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어떤 형태의 상처 처치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봅니다.
Q. 옛날에 마취 없이 수술받으면 얼마나 걸렸나요?
A. 마취가 없던 시절에는 수술 시간이 곧 생존율과 직결됐습니다. 빠를수록 고통도 짧고 쇼크로 인한 사망 위험도 낮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명의로 꼽히던 영국 외과 의사 리스턴은 하지 절단 수술을 수십 초 안에 마쳤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일반적인 수술 사망률은 60%에 달했습니다.
Q. 복강경 수술이랑 로봇 수술이랑 뭐가 다른가요?
A. 두 방식 모두 작은 구멍으로 수술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복강경 수술은 의사가 기구를 직접 손으로 잡고 5자유도로 조작하는 방식인 반면, 로봇 수술은 의사가 콘솔에서 조작하면 로봇 팔이 7자유도 이상으로 이를 구현합니다. 로봇 수술 쪽이 손 떨림 보정, 3D 입체 시야, 좌우 반전 자동 교정 등 추가 기능이 있어 정교한 부위에서 유리하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수술 비용이 높고 모든 상황에 필수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Q. 혈액형은 언제부터 맞춰서 수혈하게 됐나요?
A. 란트슈타이너가 1901년 혈액형을 발견했지만, 이를 수혈에 실제로 적용한 것은 미국 외과 의사 오텐베르크가 교차 검사를 도입한 1907년부터입니다. 이후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혈액형 일치 수혈이 전장에서 보편화됐고, 현재의 안전한 수혈 체계로 발전했습니다.
결론
제 경험상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 한 분만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번에 수술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한 명의 뒤에 마취과 의사, 간호사, 그리고 수천 년치의 실패와 발견이 쌓여 있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끓는 기름에서 결찰술로, 동물 피 수혈 실패에서 혈액형 발견으로, 마취 없는 칼에서 프로포폴로, 큰 절개에서 복강경과 로봇으로. 이 흐름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의 고통과 의료진의 도전이 쌓인 결과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로봇이 더 많은 역할을 맡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럴수록 의료의 불평등 문제가 더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첨단 로봇 수술을 누구나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기술의 진보가 오히려 의료 격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번에 병원에 가게 된다면, 처치를 받으며 이 긴 역사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pas5D1OAHE&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12
마취도 없이 수술했다고? 공포의 수술 역사 총정리 (feat. 이우정 외과 의사) [취미는 과학/ 79화 확장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