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단 4%에 불과합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나머지 96%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아직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입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세상을 과학으로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늘 둘로 나뉘는 이유 — 이분법의 본질
선과 악, 좌와 우, 육체와 정신. 세상은 왜 이렇게 자꾸 두 쪽으로 갈라지는 걸까요. 응집물질물리학(Condensed Matter Physics) 관점에서 이 질문에 접근해 보면 꽤 명쾌한 답이 나옵니다. 여기서 응집물질물리학이란 고체나 액체처럼 수많은 입자가 모인 상태에서 나타나는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인간이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인지적 편의 때문입니다. 복잡한 대상을 마주하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기준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분류하는 게 처리 속도가 빠릅니다. 원시 시대를 생각해보면, 적인지 아군인지 빠르게 판단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본능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물리학적 근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이체 문제(Two-Body Problem)와 삼체 문제(Three-Body Problem)의 차이입니다. 이체 문제란 두 천체가 서로 중력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의 운동을 계산하는 문제로,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풀립니다. 그래서 일식과 월식의 시간과 위치를 수백 년 앞까지 예측할 수 있는 거죠. 반면 물체가 세 개가 되는 순간, 계산 난이도가 두 배가 아니라 사실상 무한대로 뛰어오릅니다.
제가 이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두 개로 단순화하려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개 이상의 요소가 개입되면 우리 뇌로는 감당이 안 되니까, 결국 두 개짜리 문제로 계속 쪼개서 이해하려는 겁니다. 컴퓨터가 3진법 대신 0과 1의 2진법을 채택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3진법으로 가는 순간 회로 설계와 오류 처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거든요.
엔트로피가 우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방식
방을 청소했는데 며칠 지나면 다시 더러워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게 열역학 제2법칙(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즉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때문입니다. 여기서 엔트로피(Entropy)란 계(系) 안에서 입자들이 얼마나 무질서하게 퍼져 있는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자연 상태에서 이 값은 항상 증가하는 방향으로만 흐릅니다.
물이 든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잉크는 서서히 퍼져나가고, 다시 한 점으로 뭉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일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이 왜 피곤한 일들로 가득한지, 이 법칙 하나로 상당 부분 설명이 됩니다.
생명체는 이 무질서도의 증가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합니다. 그 저항의 연료가 바로 ATP(아데노신 삼인산, Adenosine Triphosphate)입니다. ATP란 세포가 음식물에서 에너지를 추출해 만들어내는 고에너지 분자로, 근육을 움직이거나 체온을 유지하거나 세포를 복구하는 데 쓰입니다. 쉽게 말해 몸속 에너지 화폐입니다. 이 ATP를 많이 쓸수록 우리는 피곤해집니다. 즉, 우리가 피곤한 건 엔트로피에 저항하는 데 드는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 설명이 와닿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집 안을 정리하고 나서 "왜 치워도 치워도 또 이러지?"라고 느낄 때마다,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우주의 법칙과 싸우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이 일상의 피로감에 면죄부를 주는 순간이었죠.

불공평함이 사라지지 않는 물리적 이유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감각은 누구나 한 번쯤 느낍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결과가 다르고, 출발선 자체가 다릅니다. 물리학적으로 이걸 설명하면 초기 조건(Initial Conditions)의 차이입니다. 초기 조건이란 어떤 계(系)의 상태를 결정짓는 출발점의 변수들로, 이게 조금만 달라도 이후 전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생물학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의 수정란은 하나지만, 세포 분열이 시작될 때 정자가 어느 방향에서 진입했는지에 따라 세포의 운명이 갈립니다. 심지어 줄기세포(Stem Cell)를 물렁한 환경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되고, 딱딱한 환경에 넣으면 뼈세포가 됩니다. 여기서 줄기세포란 아직 특정 기능으로 분화되지 않은 미분화 세포로, 조건에 따라 다양한 세포 유형으로 발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집니다. 초기 조건과 환경이 운명을 바꾸는 겁니다.
이 시각으로 보면 불공평함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제가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평한 세상을 만들자"는 말이 물리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명제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거니까요. 실제로 우주가 탄생할 때도 온도 차이가 0.001도 정도밖에 안 됐는데, 그 작은 차이가 지금의 은하계와 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완전히 균일했다면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불공평함을 없앨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겁니다. 의지를 강조하는 것보다 실제로 놓인 환경을 바꾸는 게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점, 줄기세포 실험이 꽤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기 조건의 차이는 물리학적으로 피할 수 없으며, 완전한 공평함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 환경의 물리적 성질(딱딱함, 부드러움 등)이 세포의 운명을 바꾸듯, 인간도 환경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발달합니다.
- 불공평함 자체는 다양성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균일한 우주에서는 별도, 생명도, 인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종류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118가지에 달하며, 이 다양성이 생명 탄생의 기반이 되었습니다(출처: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
창발 — 세상이 계속 새로워지는 원리
대화 내내 반복해서 나온 개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창발(Emergence)입니다. 창발이란 개별 구성 요소만 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성질이나 현상이 전체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쿼크 세 개의 질량을 합쳐도 양성자 하나의 질량이 나오지 않습니다. 상호 작용 자체가 새로운 질량을 만들어냅니다. 뇌세포 하나하나는 기쁨을 느끼지 않지만, 수십억 개가 연결되면 우리는 감동을 경험합니다.
제 경험상 이게 가장 직관적으로 와닿은 순간은 친구들과 대화할 때였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나오지 않을 아이디어가 세 명이 붙으면 갑자기 튀어나옵니다. 그게 창발입니다. 개인의 총합이 아니라 관계에서 뭔가 새로운 게 생겨나는 겁니다.
과학계에서도 이 창발이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s Theory)과 연결되어 연구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복잡계 이론이란 많은 수의 구성 요소들이 비선형적으로 상호 작용할 때 나타나는 집단적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로, 생태계, 경제, 신경망 등에 폭넓게 적용됩니다.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이 비선형적 상호 작용 때문입니다(출처: 산타페 복잡계 연구소(Santa Fe Institute)).
정신과 영혼을 물질의 상호 작용에서 창발된 것으로 보는 시각은 흥미롭지만, 제 생각으로는 여기서 과학과 철학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상호 작용에서 나온다"는 설명이 비유로서는 강력하지만, 의식(Consciousness)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물질에서 생겨나는지는 아직 신경과학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설명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떻게'라는 핵심 질문이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결국 세상은 복잡하고, 우리는 그 복잡함 속에서 끊임없이 창발하는 존재입니다. 엔트로피에 저항하면서 피곤해지고, 초기 조건이 달라서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이분법으로 단순화하고. 이 모든 게 어쩌면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전략들입니다. 중요한 건 이 피곤함이 우리가 질서를 만들려는 증거라는 점입니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에서 버티는 힘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놓인 환경이 불공평하다면, 환경 자체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과학으로 풀어드립니다 (feat. 박권 물리학자) [취미는 과학/ 37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Y82pubtIKkY&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