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산 하면 용암이 펑 터지고 사람들이 도망가는 장면을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조용히 참고 있는 화산"이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됐습니다. 백두산 이야기가 특히 그랬습니다. 막연하게 "언젠가 터질 수도 있다"는 뉴스만 봤는데, 정작 진짜 위험은 큰 폭발이 아닐 수 있다는 설명이 꽤 현실적으로 와닿았습니다.

백두산 마그마: 일반적 믿음과 실제 메커니즘
일반적으로 화산은 땅속에 이미 마그마가 끓고 있다가 어느 순간 뚜껑이 열려 터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개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마그마(magma)란 지구 내부에서 암석이 녹아 만들어진 액체 상태의 물질로, 지표로 나오기 전까지를 마그마라 부르고 지표에 노출된 순간부터 용암(lava)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핵심은 마그마가 단순한 녹은 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그마는 엄청난 양의 가스를 녹여 품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수증기입니다. 쉽게 말해 지구 내부의 탄산수 같은 상태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는 원리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점성(viscosity)이 낮은 마그마는 가스가 방울방울 빠져나오면서 용암이 끓듯 흐릅니다. 아이슬란드나 하와이에서 볼 수 있는 붉은 용암류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그런데 점성이 높은 마그마는 가스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 갇힙니다. 뻥튀기 기계에서 옥수수 알갱이 안의 수분이 압력을 받다가 한꺼번에 터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백두산은 바로 이 점성이 높은 쪽에 속합니다.
백두산의 분화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기 946년에 일어난 이른바 천년 대분화 당시 분출된 화산재 부피가 약 100km³에 달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는 남한 전체 면적을 약 1m 두께로 덮을 수 있는 양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남한 땅에서는 당시 화산재가 단 1mm도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분화 규모가 워낙 커서 화산재가 성층권(stratosphere)까지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성층권이란 지표에서 약 12km 이상의 상공으로, 이 높이에서는 항상 서쪽에서 동쪽으로 제트기류가 불기 때문에 화산재가 전부 일본 홋카이도 방향으로 날아간 것입니다.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소규모 분화입니다. 소규모 분화는 성층권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대류권(troposphere) 안에서 계절풍의 영향을 받습니다. 화산재가 2mm만 쌓여도 고압선에 합선이 일어나고, KTX 같은 철도가 멈추고, 전력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듣고 나서 괜히 섬뜩했습니다. 대재앙이 아니라 생활 인프라가 조용히 무너지는 시나리오가 오히려 더 현실적인 위협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백두산이 역사적으로 분화한 기록은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글로벌 화산주의 프로그램(Global Volcanism Program) 데이터베이스에 15세기 이후 총 세 차례로 공식 등재되어 있습니다(출처: 스미소니언 연구소 GVP). 다만 지질학적으로 백두산은 언제 다시 활동을 시작해도, 반대로 100년 이상 잠잠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백두산 분화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주의해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규모 분화보다 소규모 분화가 한국 인프라에 더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음
- 화산재 2mm 적층만으로도 전력·철도·통신 마비가 현실화될 수 있음
- 현재 활동 징후 모니터링은 한국지질자원연구원과 중국 측이 공동으로 진행 중
- 분화 예측은 역사 기록과 탄소 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carbon dating)을 병행해 이루어짐
화세류와 화산의 두 얼굴: 파괴이자 생명의 근원
제가 이번에 가장 오해를 많이 했던 부분이 화산의 위험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용암이 흘러내려 집을 삼키는 장면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훨씬 치명적인 것은 화세류(pyroclastic flow)입니다. 화세류란 화산 폭발 시 고온의 가스와 화산재, 암석 파편이 뒤섞여 산비탈을 빠르게 쏟아지는 현상으로, 쉽게 말해 700도짜리 화산재 덩어리가 시속 600km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관측된 최고 속도가 시속 600km이라는 수치를 들었을 때, 저는 이게 영화 속 설정이 아닌 실제라는 게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Vesuvius)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소멸한 것도 이 화세류 때문이었습니다. 화세류가 도시를 덮치면 유기물은 모두 연소되고, 재가 굳으면서 사람 형태의 빈 공간이 남습니다. 훗날 고고학자들이 그 공간에 석고를 부어 당시 희생자들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편 화세류와 화산재가 퇴적된 후 다시 녹아 용암으로 변하는 현상을 용결응회암(welded tuff) 형성 과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용결응회암이란 화산재가 퇴적된 뒤 내부에서 결정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잠열이 방출되어 온도가 재상승하고, 재가 다시 녹아 굳은 암석을 말합니다. 화산재가 쌓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자체가 용암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제 경험상 가장 예상 밖의 내용이었습니다.
분화위험: 재난?
그런데 화산을 재난으로만 보면 절반밖에 못 봅니다. 화산 활동이 없었다면 지구에 바다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땅속 암석과 결합해 있던 물이 마그마 형태로 지표까지 공급되면서 지구의 해수가 형성됐다는 것입니다. 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은 지구 내부에 극미량으로 균일하게 퍼져 있어 그 상태로는 활용이 불가능합니다. 마그마가 지하수를 데우고, 그 물이 주변 금 성분을 녹여 이동시키다가 온도가 낮아지는 지점에 침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채굴 가능한 금광맥이 만들어집니다.
화산섬에서 생태계가 처음부터 새롭게 형성되는 1차 천이(primary succession) 과정도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1차 천이란 생물이 전혀 없는 땅에서 흙이 만들어지고 식물이 자라며 동물과 곤충이 유입되어 생태계가 완성되는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화산이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생명의 시작점을 만든다는 시각은 과학적으로도 꽤 유효합니다. 부석(pumice), 즉 마그마 내 가스가 빠져나가며 수많은 기공이 생긴 가벼운 화산암이 울릉도 명이나물처럼 특수 작물의 재배 토양으로 쓰이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화산 지대 주변 토양이 농업에 유리한 이유는 마그네슘, 포타슘 등 식물이 직접 흡수할 수 있는 미량 원소가 풍부하게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하와이 코나 커피, 에티오피아 고원 커피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도 화산성 토양의 역할이 큽니다. 국내에서도 울릉도 명이나물이 육지산과 맛과 품질에서 비교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출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방송을 보고 나서 계속 머릿속에 남는 건, 화산이 위험한지 안전한지를 "얼마나 크게 터지느냐"로 판단하던 저의 기준이 완전히 틀렸다는 점입니다. 가장 위험한 화산은 조용히 참고 있는 쪽이고, 가장 극적으로 보이는 화산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덜 위험할 수 있다는 역설이 인상에 깊이 남았습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화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백두산 모니터링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으니 살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평소 지나치던 산과 지형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건 아마 그 이후부터일 겁니다.
참고: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 혁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feat. 김상욱 교수) [취미는 과학/ 62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ofORHQZROZM&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