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름, 저는 회사 창고 앞에 쌓아둔 생수를 박스째 꺼내 마셨습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자리였는데, 뜨거워진 페트병을 아무 생각 없이 들고 다니면서 물을 마셨습니다. 그때는 미지근한 물이 속에 안 좋겠다는 정도만 생각했지, 플라스틱이 잘게 쪼개져 몸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연구 결과들을 접하고 나서야 그 여름이 다르게 기억되기 시작했습니다.

플라스틱이 '미세화'되는 과정
플라스틱은 분해되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잘게 쪼개질 뿐입니다. 환경과학 분야에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분해'가 아닌 '미세화(microfragmentation)'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미세화란 플라스틱이 자외선, 산소, 열에 의해 표면부터 잘게 부서지면서 점점 작은 입자가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어디를 잘라도 소시지가 여전히 소시지인 것처럼, 플라스틱은 크기가 줄어들어도 원래의 화학적 성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특히 야외 환경에서의 미세화 속도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태양광에 2~5년만 지속 노출되면 표면이 부서질 준비가 완료되고, 이후 파도나 바람 같은 약한 충격만으로도 수억 개의 입자가 발생합니다. 제가 창고 앞에 놓아둔 생수병이 정확히 그 최악의 조건에 놓여 있었던 셈입니다. 태양광, 산소, 높은 열, 세 가지가 모두 갖춰진 환경이었으니까요.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이란 5mm 이하 크기의 플라스틱 입자를 말하며, 1마이크로미터(㎛) 이하의 초미세 입자인 나노플라스틱(nanoplastics)까지 포함하면 그 범위는 더욱 넓어집니다. 나노플라스틱은 크기로 비유하면 지구 직경을 1m로 놓았을 때 축구공 정도에 해당할 만큼 극미소한 단위입니다. 이 크기까지 작아지면 피부나 혈액-뇌 장벽(BBB, Blood-Brain Barrier)까지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혈액-뇌 장벽이란 유해 물질이 뇌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인체의 보호막인데, 나노 크기의 입자는 이 방어선을 뚫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것이 1차 미세플라스틱과 2차 미세플라스틱의 구분입니다. 1차 미세플라스틱은 화장품 스크럽제처럼 처음부터 작은 크기로 의도적으로 제조된 입자를 말하고, 2차 미세플라스틱은 환경 중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 풍화를 통해 잘게 부서진 것을 말합니다. 2017년부터 국내에서 1차 미세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가 시행되었지만, 2차는 이미 환경 전반에 산재해 있어 관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출처: 환경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경로와 건강 위협
저는 운동을 좋아해서 합성 섬유 소재 운동복을 자주 입고, 건조기도 매일 사용합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서 합성 섬유 의류를 세탁하면 수십만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폐수로 방출되고, 건조 후 옷을 털어도 거의 비슷한 양이 공기 중으로 나온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 꽤 오래 멍하니 있었습니다. 저의 아침 루틴 전체가 미세플라스틱 발생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미세플라스틱이 인체로 유입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 호흡: 공기 중에 부유하는 미세플라스틱 입자를 폐로 흡입하는 경로입니다. 대도시 공기 1세제곱미터(1m×1m×1m) 안에 최대 5,700개의 미세플라스틱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 섭취: 음식과 음료를 통한 경로입니다. 소금, 수산물, 채소, 맥주, 치즈, 패스트푸드 등 사실상 거의 모든 식품에서 검출이 확인되었습니다.
- 피부 흡수: 나노플라스틱 수준의 초미세 입자는 피부를 통한 흡수도 가능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화장품이나 물티슈를 통한 피부 접촉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경로입니다.
특히 종이컵과 티백은 안전하다고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종이컵 내벽은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되어 있어 뜨거운 음료 한 잔을 마실 때 약 15억 개의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티백 역시 폴리프로필렌(PP) 소재로 만들어진 경우가 많아 한 번 우려내면 약 12억 개의 초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됩니다. 폴리프로필렌이란 열에 강하고 성형이 쉬워 식품 포장재와 티백에 널리 쓰이는 합성 고분자 플라스틱입니다.
건강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도 점점 쌓이고 있습니다. 경동맥 혈전 환자 312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혈전에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사망,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위험 발생률이 약 두 배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기증된 시신의 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치매 진단을 받은 그룹의 뇌에서 초미세플라스틱 농도가 7배 이상 높게 측정되었습니다. 아직 인과관계가 완전히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상관관계 자체가 이미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출처: 국립환경과학원).
내분비 교란 물질(환경호르몬)도 빠질 수 없는 문제입니다. 내분비 교란 물질이란 인체 호르몬 시스템을 교란시켜 생식 기능, 면역 반응, 성장 발달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입니다. 페트병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가소제 프탈레이트(phthalate),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에 쓰이는 비스페놀 A(BPA)가 대표적입니다. 이 물질들이 미세플라스틱과 함께 체내로 유입되면 이른바 '화학물질 칵테일' 효과를 일으킵니다. 즉, 여러 유해물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단독으로 있을 때보다 독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실적인 실천과 앞으로의 전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환경 문제라고 하면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봉지나 해안의 쓰레기 더미만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제 식탁, 제 옷장, 제가 매일 숨 쉬는 공간 전체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 역시 같은 말을 합니다. 다만, 노출량을 줄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제가 최근에 바꾼 습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페트병 생수 대신 수돗물을 끓여 마시기 (생수병보다 미세플라스틱 검출량이 현저히 낮음)
- 종이컵 대신 개인 텀블러 사용
- 티백 대신 스테인리스 거름망으로 찻잎 우리기
- 합성 섬유 의류 세탁 시 미세플라스틱 포집 필터백 사용 검토
- 플라스틱 용기에 음식을 담아 전자레인지에 가열하지 않기
재활용도 맹목적으로 믿기 어렵다는 점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기계적 재활용이 실제로 가능한 플라스틱은 투명하고 연질인 PET 계열로 매우 한정적이며, 재활용 공정 자체에서도 분쇄 과정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이 대기와 수계로 방출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화학적 재활용인 해중합(depolymerization), 즉 고분자 사슬을 원래의 단량체 상태로 분해해 원료를 복원하는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 기술의 상용화가 진행 중이며, 전 세계 연구팀들이 효소를 이용한 플라스틱 분해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습관 변화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생산 단계에서의 규제, 야외 사용 플라스틱에 대한 국제 표준, 재활용 공정의 미세플라스틱 방출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도 저는 문제를 알고 나서 뭔가 하나라도 바꾸는 것이 의미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이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보다 조금씩 다르게 선택하는 계기가 되면 충분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 또는 환경 관련 조언이 아닙니다.
참고: 치매에 파킨슨병까지?! 과학자들이 경고한 미세플라스틱의 정체 (feat. 심원준 박사) [취미는 과학/ 35화 확장판] :
https://www.youtube.com/watch?v=9Tcry58_vqY&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