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생물 종의 75% 이상이 단기간에 사라지는 사건을 '대멸종'이라 부르는데, 이런 일이 지구 역사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운석 충돌 한 번으로 공룡이 사라진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앞에 네 번이나 더 있었다는 게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지질시대마다 반복된 대멸종의 기록
지구의 지질시대는 캄브리아기부터 시작해 오르도비스기, 실루리아기, 데본기, 석탄기, 페름기,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순으로 이어집니다. 이 순서를 저는 한동안 헷갈려했는데, '캄오실데석탄 포오시면 튀김 지포 100마리 드릴게요'라는 말로 외운 뒤로는 꽤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각 지질시대 이름에는 나름의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페름기(Permian)는 러시아의 도시 페름에서 처음 해당 지층이 발견되어 붙은 이름이고, 트라이아스기(Triassic)는 독일에서 발견된 세 개의 선명한 지층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여기서 트라이아스란 그리스어로 '셋'을 뜻하는데, 세 개의 층이 너무나 뚜렷하게 구분되어 이름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백악기(Cretaceous)는 라틴어 크레타에서 온 것으로, 조개 껍데기가 눌려 만들어진 분필 성분 지층이 이 시대의 특징입니다.
다섯 번의 대멸종을 시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차: 오르도비스기 말 — 지구 전체 빙하화로 바다 서식지 급감
- 2차: 데본기 말 — 육상 식물 번성으로 인한 해양 부영양화와 산소 부족
- 3차: 페름기 말 — 100만 년에 걸친 화산 폭발, 생물 종의 95% 소멸
- 4차: 트라이아스기 말 — 화산 활동 반복, 공룡 본격 등장의 계기
- 5차: 백악기 말 — 지름 10km 소행성 충돌, 공룡 멸종
제가 어릴 때 공룡 멸종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히 5차 대멸종만 미디어에서 집중적으로 다뤘기 때문이었습니다. 1차부터 4차까지의 이야기는 훨씬 덜 알려져 있지만, 오히려 그 메커니즘이 더 복잡하고 흥미롭습니다.
생존 전략: 살아남은 종들의 공통점
대멸종이 반복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생물들에게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당시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생태계 최상단에 있다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 다섯 번의 사례에서 일관되게 확인됩니다.
살아남은 종들의 특징을 보면 첫째로 몸집이 작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먹이가 부족한 극단적 환경에서 소식으로 버틸 수 있는 작은 개체들이 유리했습니다. 둘째로 편식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았습니다. 상어가 네 차례의 대멸종을 견뎌낸 이유도 서식 환경과 먹이에 대한 적응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배경 멸종(background extinction)이라는 개념도 여기서 중요합니다. 배경 멸종이란 대규모 사건 없이도 서서히 경쟁에 밀려 종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지구 생물 역사에서 멸종한 종의 약 90%가 이 방식으로 사라졌습니다. 갑주어가 2차 대멸종 이전에 이미 사라진 것도 더 유연한 어류들이 등장하면서 먹이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입니다. 대멸종만큼 극적이지 않지만, 진화의 일상적인 흐름 안에서 이미 끊임없이 종의 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묘하게 현실적인 불안을 느꼈습니다.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고 자원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존재가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패턴은, 지금 인간의 위치와 겹쳐 보이기 때문입니다.

6차 대멸종, 지금 이미 시작됐다는 근거
이미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됐다는 시각이 있는데, 저는 이 주장을 처음 접했을 때 과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근거를 살펴보면 단순한 경고가 아닌 실측 데이터에 기반한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발표한 적색목록(Red List)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평가 대상 종 가운데 28%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출처: 세계자연보전연맹 IUCN). 여기서 적색목록이란 야생 생물의 멸종 위험도를 전문가 기준으로 평가하여 등급화한 목록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공신력 있는 생물 다양성 지표입니다. 1970년 이후 전 세계 야생동물 개체수가 평균 73% 감소했다는 수치도 제시되어 있습니다(출처: WWF 지구생명보고서 2024).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개념도 이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층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지질학적 시대를 의미합니다. 1945년 이후 전 세계 지층에서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기 시작했고,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층도 급격히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생물학적 지표로 닭뼈가 꼽힌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이후 공장식 양계가 보편화되면서 전 세계 지층에서 동시에 닭뼈가 대량으로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삼엽충 화석이 쏟아지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방식입니다.
다만 인류세가 공식 지질시대로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2024년 부산에서 열린 세계 지질학 총회에서 인류세 선포 안건이 정식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지질학적 기준을 아직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였지만, 문제의 심각성 자체는 지질학계 안팎에서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
대멸종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한 공포가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직접 이런 콘텐츠를 접하면서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아마겟돈 같은 재난 영화를 보며 느끼던 그 공포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과거 다섯 번의 대멸종을 공부하다 보면 오히려 실마리가 보입니다. 원인이 명확한 문제에는 방향도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핵심은 온도 자체보다 속도에 있습니다. 농업이 시작되기 전 2만 년에서 1만 년 사이, 지구 평균 기온이 4도 오르는 데 1만 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100년 사이에 이미 1도가 올랐습니다. 생태계가 적응하기 어려운 속도입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행동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는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에너지 전환, 식단 변화, 생물 다양성 보호 정책은 개인 실천과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움직일 때 효과가 납니다. 5차 대멸종 이후 5%만 살아남았던 생명들이 새로운 생태적 틈새를 채우며 중생대를 열었듯이, 지금 위기를 인식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과거의 멸종 기록은 단순히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치킨을 먹을 때마다 저는 공룡의 후손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떠올립니다. 그 공룡이 살아남아 닭이 된 것처럼, 어떤 조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지금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참고: 6차 대멸종은 이미 시작됐다? 대멸종기에 태어난 인류에게 전하는 멸종의 역사 (feat. 이정모 관장) [취미는 과학/ 26화 확장판]:
https://m.youtube.com/watch?v=KDgfVKJGNus&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42&pp=iAQ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