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하면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세탁기가 생기면 빨래 시간이 줄고, AI가 생기면 업무가 줄어든다고요. 그런데 저는 입사 이후 오히려 반대 경험을 했습니다. 시스템은 좋아졌는데 처리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케인스가 "2030년이면 주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실에서 하루 12~15시간을 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단순한 게으름이나 비효율이 아니라는 점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기술이 편해질수록 욕구도 함께 커진다
1920년대 미국에서 세탁기가 중산층 가정에 보급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가사 노동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10시간짜리 빨래를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으니, 나머지 9시간은 온전히 자유 시간이 될 거라고요. 그런데 실제 통계는 달랐습니다. 세탁기가 보급된 이후 미국 가정의 가사 노동 시간은 오히려 소폭 늘어났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기존에는 속옷을 일주일, 겉옷을 2주씩 입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세탁이 쉬워지자 사람들은 매일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세탁 횟수 자체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제본스 역설(Jevons Paradox)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제본스 역설이란, 기술 효율이 높아질수록 그 기술의 사용량이 오히려 더 늘어나 총 자원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본스가 석탄 소비를 분석하며 처음 제시한 개념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 패턴은 지금도 그대로입니다. 회사에서 문서 작성 툴이 좋아질수록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문서를 만들게 되고, AI 초안 기능이 생기자 오히려 더 많은 보고서를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편해졌다는 느낌보다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느낌이 훨씬 컸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18세기 영국의 도자기 제조업자 조사이어 웨지우드(Josiah Wedgwood)의 사례도 인상적입니다. 웨지우드는 온도·시간 측정 기술을 혁신해 고급 도자기를 대량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귀족만 누리던 물건이 중산층에게도 퍼지면서, 오히려 도자기 생산 총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기술 혁신이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그 욕구가 다시 노동량을 늘리는 구조입니다. 이 원리는 140년 전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시카고에서 집회를 열었던 노동자들(출처: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소리가 왜 아직도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 세탁기 보급 후 미국 가사 노동 시간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었습니다.
- 제본스 역설: 효율이 오를수록 사용량이 늘어 총 노동량은 증가합니다.
- 기술 혁신은 욕구를 자극해 새로운 소비와 노동을 만들어냅니다.
- 교회 청년회 행사 준비를 경험하면서도 같은 패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디자인 툴이 좋아지자 포스터 한 장이 아니라 영상·카드뉴스까지 추가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AI 시대의 탈숙련과 노동의 재편
산업혁명 당시 방적기·방직기가 도입되었을 때, 숙련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대신 기계가 멈출 때 막대기로 실을 풀어주는 단순 작업에 아동이 투입되었습니다. 자동화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기계를 다루는 새로운 숙련공이 다시 필요해졌고, 이들이 고임금을 받으면서 빈부격차는 오히려 줄어드는 국면이 왔습니다. 이처럼 기술과 사회 제도가 결합할 때 노동 세계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AI 시대에도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ATM이 은행 창구 업무를 자동화했을 때 은행원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ATM 덕분에 지점 운영 비용이 줄어 은행 수가 늘어났고, 직원들은 단순 업무 대신 상담·판매 등 고부가가치 업무로 전환되었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AI 학자 제프리 힌턴이 "방사선과 의사를 더 이상 키우지 말라"고 주장했을 때도, 현실에서는 AI 판독이 방사선과 의사 업무의 20% 미만만 대체했습니다. 나머지는 협진, 판단, 책임 등 비디지털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그런데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낙관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좀 조심스럽습니다. 탈숙련(de-skill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탈숙련이란, 자동화로 인해 사람들이 특정 기술을 배울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입문 단계 업무가 AI로 대체되면, 초보자가 경험을 쌓으며 전문가로 성장할 경로가 막힐 수 있습니다. 농사도 못 짓고 음식도 못 만드는 것처럼, 어느 순간 기초 없이 상층부만 남은 구조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인공 일반 지능의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AGI란 특정 작업에 특화된 기존 AI와 달리, 인간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범용적으로 추론하고 판단할 수 있는 AI를 의미합니다. 오픈AI는 이를 5단계로 구분하는데, 현재는 2단계(추론) 수준에 도달했고 3단계인 에이전트(agent) 단계를 향해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에이전트란 사람의 지시에 따라 스스로 여러 작업을 연속으로 실행하는 AI를 말합니다. 제가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가능하지만, AI가 오판해 엉뚱한 구매나 이메일 발송 같은 실수를 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상용화를 늦추는 핵심 원인입니다.
ROI(투자 대비 수익률)의 문제도 중요합니다. ROI란 특정 기술에 투자했을 때 그 비용 대비 실제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는 AI 도입 ROI가 높아 대체 압력이 강한 반면, 철학이나 기초과학 연구처럼 AI를 투입해도 수익화가 어려운 분야는 오히려 안정적으로 살아남는 역설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술이 발전해도 노동 시간이 줄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A. 제본스 역설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효율이 높아지면 단위 작업 시간은 줄지만, 그만큼 더 많은 작업이 생겨납니다. 세탁기 보급 이후 미국 가사 노동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기대치가 올라가면서 새로운 일이 계속 만들어지는 구조입니다.
Q. AI가 내 직업을 빼앗을 가능성이 높을까요, 낮을까요?
A. 직종 전체가 아니라 직종 내 특정 태스크 단위로 생각해야 합니다. AI 도입 ROI가 높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단순 판독 업무는 대체 압력이 강하지만, 비디지털 판단과 책임이 필요한 영역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새 직업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적응의 속도 차이가 더 큰 문제라고 봅니다.
Q. AGI는 언제쯤 실현될까요?
A. 전문가마다 정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시점을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오픈AI는 2030년까지 5단계(오케스트레이션 AI) 도달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AI 학계에서는 과거 수차례 반복된 'AI 겨울' 경험 때문에 섣부른 예측을 경계하는 시각도 강합니다. 인간과 구별이 안 되는 수준의 AGI는 상당히 먼 이야기라는 의견이 아직은 더 많습니다.
Q. 노동 시간을 줄이려면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A. 솔직히 이건 개인 차원보다 제도 차원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886년 시카고 집회에서 8시간 노동을 요구한 것처럼, 테일러리즘의 당근(5달러 데이)이 다른 현장에서 빠진 것처럼, 기술 발전의 혜택이 노동자에게 실제로 돌아오려면 사회적 제도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AI 도구를 잘 활용해 여유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결론
기술은 노동을 없애지 않았습니다. 노동의 형태를 바꾸고, 욕구의 기준선을 높이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왔습니다. 세탁기, 다이너마이트, ATM, 그리고 AI까지 모두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체만으로 삶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믿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제 경험상 그 편함은 결국 더 높은 기대치로 상쇄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흐름 속에서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같은 시간에 낼 수 있는 성과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술이 일을 없애주길 기다리기보다, 지금 쓸 수 있는 도구를 먼저 손에 익히는 것이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도구가 탈숙련을 가져오지 않도록, 기초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FXbmuSJmpJw&list=PLkKcqR2KGxgzqeKZo1Rx93kJFokuVkpye&index=10